건강/심리 ・2024. 3. 9.

한국남성이 일본여성에게 우호적인 이유, 한국과 일본의 여성성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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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한국 여성의 매력보다 일본 여성의 매력이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한국 남성이 많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한국 여성이 일본 여성의 심리를 흉내 내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경쟁은 '여성성'의 우위를 남성에게 어필하는 과정에서 일본 여성의 심리가 더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던 현상에 가까웠지만 최근에는 그 범위가 결혼 적령기 남성들 다수에게 확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일본은 한반도에서 나간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얼마 전까지 같은 나라였던 남북한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처럼 단지 한반도에서 나간 사람들이 일본에 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한국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유전적인 차이는 거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시대상을 토대로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한국 남성이 일본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원인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뒀습니다.

제사장(선비)의 나라 대한민국, 사무라이(무사)의 나라 일본

한국은 전통적으로 집안의 관리를 여성이 해왔으며, 일본은 남성이 해왔습니다.

 

한국 문화에서 남성은 여성이 하늘의 뜻을 받아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도와주는 존재였으며 일본 문화에서 여성은 남성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였던 것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남성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알고 보면 여성이 하라는 대로 선택하는 남성의 숫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외척 세력이 막강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사회에서 약한 여성이 감히 강한 남성의 신성한 선택에 관여하는 것은 용납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받은 신탁을 남성이 이행하는 것에 관한 불만은 곧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종교관의 차이가 같은 혈통이였던 한국계과 일본계를 나눈 것입니다.

 

현재에 와서는 한국의 여러 단어에 남아 있는 종교적 언어들이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지 왜 이런 문화가 남아 있는지에 관한 기억은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라는 말의 어원조차 잃어버렸으니 더 이야기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자료들을 근거로 했을 때 추론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국 문명은 어떤 설계된 미래를 여성이 전파하는 과정에서 파생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일본 문명은 전쟁에서 승리한 남성들이 화합하는 과정에서 파생 됐을 것입니다.

일본사회는 강자가 하늘을 대신해서 사람을 다스린다고 믿었으며, 한국사회는 덕(德)이 있는 자가 하늘을 대신해서 사람을 다스린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다만 일본사회에서는 강함의 전통이 계승됐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미래에 관한 설계의 개념이 소실되면서 위대했던 문명이었음에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됐을 것입니다. 과거에 한국 문명을 이끌었던 존재에 관한 향수로 인해서 심리적 안식을 위한 맹신만이 망령처럼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한국여성과 일본여성의 '여성성'을 만드는 종교관

아마도 아주 오래전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의한다면 한국 여성은 행복한 인생을 설계하는 아름다운 성직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전사로서 집안의 가축과 노예를 관리하기도 했을 것이며 높은 지적 능력으로 한국 남성들을 행복한 길로 인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지금 아이돌의 이미지에 능력과 배려심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로 전승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한국 남성들이 여성의 경건함이나 순결 등을 문제 삼는 이유도 과거 종교관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한국여성이 신성한 존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승리를 위해서 고군분투했습니다. 일본 여성은 결혼을 하면 그 남성의 성씨로 바꾸기까지 합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남성의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줘서 승리를 도와줄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여성성'이 발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 여성들은 야망(野望) 이 있는 남성을 선호합니다.

일본에서는 강한 남성을 만나지 못한 여성은 대체로 살해당하거나 노예로 강등되는 일들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통합되지 않고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를 가진 나라들이 최근까지 싸워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정의로움은 오직 '강함'에 있었으며, 한국의 정의로움은 물리적 강함보다는 신성한 종교관에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한국 문명은 종교로 다스리는 신성국가를 표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초기에는 과학 문명으로 시작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기적이고 잔인한 사람들의 거짓말에 의해서 종교로 변형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남성은 어릴 적부터 책임감을 배우며 군대에서 일방적으로 희생하더라도 남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남성은 여성이 비해서 어려운 일을 해왔는데, 이러한 전통 또한 여성이 한국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 자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많은 여성들이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안위만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국 남성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여성은 남성을 신앙심으로 이끌었던 역사가 있었지만 그 끝에서 불행이 찾아왔다면, 남성은 여성을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타락한 존재로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에 녹아 있는 관습의 영향을 은연중에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려는 일본 여성, 아이를 낳아준다는 한국 여성

아이를 낳는 것에 관해서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여성은 아이를 낳는 것을 '여성의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 여성은 아이를 낳는 것을 '남성의 욕망'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차이도 개인의 성향을 넘어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습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적어둔 것처럼, 한국사회는 오래전부터 여성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내려준다는 신을 '삼신할머니'라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한국 문명의 창조신도 '마고할미'라고 하는 여신입니다. 여성은 신성한 존재로서 지상을 구원할 수 있는 신성한 아이를 낳아준다는 개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노예계층은 논외입니다. 

 

일본에서 여성은 권력자의 자손을 낳지 않는다면 특별한 신분이 아닌 이상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끝없는 전쟁터에서 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권력자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남성을 제외하고 평범한 한국 남성들은 여성이 잘해주면 모든 것을 넘겨주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일본 여성의 관점에서는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남성의 관점에서 행복을 주는 여성은 '여신'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평생 지켜내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풍토들을 살펴보면서 강력한 종교관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놀랍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가장 처음 적어 둔 것처럼, 한국 여성과 일본 여성의 뿌리는 같기 때문에 환경과 종교관이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길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일본 여성의 선택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결국, 한국 여성도 일본 여성의 심리를 배우는 사례들이 대폭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변화의 순간, 종교의 속박을 푸는 과정

성별에 따른 불안정한 기류는 편안한 종교관의 속박에서 추방당했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 종교의 절대신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인식시킨다면 심각한 혼란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종교관에 따라서 행동했던 기본 토대가 흔들리면서 질서가 혼란한 상황으로 변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일본도 바로 그 자리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여성은 본질적으로 의지를 할 대상을 찾고 있었으며 그러한 성향은 여성의 성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게 금전적이든 심리적이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어떻게 할지에 관해서 종교관에 기대서 합리화하거나 만족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종교관 자체가 사라진다면 사회적으로 여성을 특별하게 지원하는 정책들이 여성의 성적 만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성적 만족에 남성의 능력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이 상황이 진행 중에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 여성의 방식에 실망한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출산율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남성이 한국여성이 낳은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서 남성을 희생시키는 종교관을 남성들이 거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종교관의 속박을 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사회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발생되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새로운 종교관이 확립되거나 아니면 아예 과학적 관점에서 이익계산으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한국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남겨주기 위해서는 한국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일본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풍토를 단순히 변태여서라든지 하는 방식으로 폄하하고 끝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연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 문화적 통합을 이루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스스로 2등 시민을 자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해를 받으려는 마음을 이해를 하려는 마음으로 바꿔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국 남성들의 마음은 고스란히 한국 여성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