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를 제작할 때 상업용으로 만들 경우 성공을 위한 '공식'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국내에서는 주로 '애국주의', '신파', 등의 장치들이 자주 사용되는 것처럼 일본 만화에도 흥행을 위한 클리셰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일본 만화에서 사용하는 클리셰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반복적으로 쾌락을 자극하는 페티시의 일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신선한 방식보다는 사람의 본능을 직접 자극하는 형태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용 자체가 좋은 작품들도 많이 있으며 페티시를 자극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특별히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적어두겠습니다.
일본 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클리셰
-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생을 극복하는 히어로
- 한 명의 남성이 다수의 여성에게 사랑받는 구조
- 거의 반드시 나오는 성적 판타지 묘사
- 동료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파티 플레이
- 기존의 관점 비틀기
- 혈통 주의
- 신토 기반의 애니미즘(animism)
- 영국과의 인연
위의 8가지 기반 클리셰에서 세부적인 페티시까지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만 우선 하나씩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적어두겠습니다.
첫 번째 방식은 스포츠물, 성장물 소년만화 등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노력을 통한 성장으로 히어로가 되는 방식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아예 다른 세계로 이주하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하는 방식으로 변형됐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노력이 가지는 의미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졌음을 의미하고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흔히 '하렘물'이라고 하는 일부다처제를 지향하는 방식의 콘셉트입니다.
이러한 스토리는 일본 만화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일본만화 중에서 '원피스'에서도 루피를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는 나미뿐 아니라 보아 행콕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킹덤'이라고 하는 유명한 만화에서도 주인공 신을 두고서 하료초와 강외라고 하는 두 여성이 경쟁합니다.
한 명의 남성을 두고 2명의 여성이 경쟁하는 경우는 그래도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들에서 그런 편이며 내용보다는 자극 위주의 작품들에서는 경쟁 여성 캐릭터의 숫자가 더 증가하기도 합니다.
최종적으로 일부다처제 가정을 이루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세 번째, 성적 판타지는 주로 남성 독자의 시점에서 성행위가 연상되는 구도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전략은 국내 여성 아이돌들도 자주 사용하는 콘셉트이기도 합니다. 남성이 어떤 여성 캐릭터에 깊게 몰입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인데요. 여성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대체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동작이나 몸짓 등이 많아서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일수록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묘사되며, 연재 과정에서 인기가 많아지면 노출 정도를 덜 노골적인 방식으로 축소시키기도 합니다.
네 번째, '동료 의식'을 강조하는 클리셰도 자주 발견 됩니다. 파티 플레이가 아닌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반도에서는 국가 전체가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본 열도에서는 소규모 부락 간의 전투가 자주 발생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동료 그룹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다섯 번째, 관점 비틀기도 일본 만화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한국의 작품들은 캐릭터 콘셉트이나 작품의 분위기 등이 확정된 경우 잘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일본의 작품들에서는 악역이 선한 역할이 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게 있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을 구하는 '용사'가 사실은 '악당'이 되거나 약해 보이는 여성이 강력한 무력을 지녔다거나 양아치나 깡패들을 사실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묘사하는 등의 콘셉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을 아름답게 비트는 능력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저는 일본 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관점 비틀기'는 배울 필요가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쾌락을 이용한 믿음의 전향 유도에 불과한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응용을 해보면 세상을 더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관리 가능한 쾌락은 인생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혈통주의도 자주 사용됐지만 요즘에는 사용을 안 하려는 분위기 같습니다. 원피스나 나루토, 블리치 등의 유명한 만화의 주인공들도 사실, 혈통적으로 우월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작품들은 '선택받은 자'의 콘셉트를 더 지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예 하층민에서 출발하는 묘사도 많이 있습니다.
일곱 번째 애니미즘(animism)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신토 사상은 일본 만화에서 자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과거 샤머니즘을 믿던 시절에 애니미즘도 같이 믿었기 때문에 특별한 거부감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큰 인기를 얻었던 것만 봐도 애니미즘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덟 번째, 영국과 유대감을 강조하는 내용도 많이 나옵니다. 주로 노란색 머리카락의 외국인이 묘사된다면 대부분 영국인을 모티브로 만든 것입니다.
특히 영국인이 일본인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방식으로 묘사되는데요.
요즘 인기 있는 '스파이 패밀리'에서도 포저 일가의 남편 로이드 포저는 영국 남성을 모티브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아내 요르 포저는 일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영국과 좋은 관계를 복원하고 싶어 하는 공감대를 반영한 것입니다.
많은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일본 만화
일본 만화를 살펴보면서 앞서 8가지 패턴을 기반으로 하면서 동시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반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제국이 실패한 것에 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전투기의 성능이 미군에 비해서 부족했다는 아쉬움은 메카물이라고 하는 로봇 만화로 표현하고 있으며 영국인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해서 일본제국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만화에서는 영국인과 친한 것으로 묘사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 남성이 초식화 되어가는 문제에 관해서도 일본 만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본 여성은 과거에 순종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초식남에게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강한 모습이 추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여성 콘셉트는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차용해서 일본 여성의 문화와 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사회에서 전략적으로 일본 여성의 이미지를 강화해서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남성과 만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기는 하지만 정서는 어머니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상류 사회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능력이 부족한 하류 사회의 여성들은 의지 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능력 없는 여성이 남성과 결혼을 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한국 남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국 여성이 아이를 잘 낳지 않는다는 현실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하층민 일본 여성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유능한 남성을 일본으로 끌어 올 수 있는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일본 만화는 일본 여성을 동경하도록 제작되어 있으며 그러한 특징들이 현실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