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뿐 아니라, 오프라인 소비 동향 등을 조사해 보면 대략적인 사람들의 선택과 행복의 기준에 관한 고민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와는 다르게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능력이 있든 없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방식 와해되고 있습니다.
물러나지 않는 기득권의 독점으로 이어지면서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개념에 대해서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기다려도 자신의 차례는 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 일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개념은 국가 단위에서 세계 단위로 확장되며, 다른 국가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나름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연애와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들
행복한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이와 같은 방식을 담고 있는 인기 있는 콘텐츠나 스트리머 등을 참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호하는 연애나 결혼의 반대 버전도 그대로 확인하면서 비교를 해본다면, 나름의 결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행복한 연애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두 사람의 신뢰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 신뢰는 실질적인 사실에 근거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애를 많이 해봐야 결혼을 잘할 수 있다고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많이 다릅니다. 성별과 무관하게 과거가 있는 사람을 100% 신용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깨진다면 그 사이는 불행한 관계가 됩니다. 결혼의 본질 자체에 금이 갔기 때문에, 애초에 부부사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연애와 결혼이 불행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성별 갈등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불행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남성을 ATM기로 이용하거나, 여성의 마음을 현혹해서 이용하다가 버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행동들을 야만적인 약탈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연애나 결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기준을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기 위해서 시도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행복한 연애와 결혼의 기준,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
고장난 호르몬은 강렬한 감각만을 원합니다. 충동에 사로잡혀서 인생을 강렬한 감각에 던졌다면, 행복한 감각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단편적입니다. 충동적인 행복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거에 연애와 결혼의 책임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순간적 충동의 만족감을 원하고 있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남녀사이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장 난 감각과 고장 나지 않은 감각을 나눠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대체로 강한 남성이 같은 편이 되어주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이 매력적이라고 체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존에 있어서 여성은 대체로 남성에 비해서 불리하며, 같은 편이 중요하다는 감각은 다양한 콘텐츠에서 백마 탄 왕자로 형상화되기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강한 남성을 대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대체로 결혼에 대한 관심이 감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국가에서 복지 차원으로 돈을 준다거나 부모가 용돈을 지속적으로 준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가 돈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금전적 성공을 거뒀을 경우 일 것입니다. 국내 통계들을 살펴보면 한국 여성이 비혼을 선언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계기는 여성에 대한 금전적 복지의 증가와 맞물려 있습니다.
남성이 결혼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남성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때 대체로 결혼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며, 남성이 경제적 여유를 제공한다면 심리적인 부분은 여성에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남성들은 경제위기가 오면 결혼을 생각하는 비율이 대폭 감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남성으로서 가정을 지킨다는 역할을 실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즐기는 유흥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 과정이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흘러서 남성의 행복 조건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결혼 적령기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깊은 이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은 여러 콘텐츠와 방송인, 심지어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그렇게 수집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남성의 행복에 관심이 없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양성 갈등을 야기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의 양성갈등은 앞서 다른 포스팅에서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한국 남성들의 행복 기준은 한국 여성들의 행복 기준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가난하고 나이 많은 1인가구가 대폭 증가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불행한 나라가 되어 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행복을 탐색하는 것을 방해하는 기성세대
저는 그나마의 가능성 조차도 막고 있는 기성세대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사용하는 부모세대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던 과거의 기준을 바탕으로 자녀세대에게 '부모에 대한 공경'을 원하고 있습니다. 자녀세대가 성장해서 어른이 됐음에도 어른이 됐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는 정신세계는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자립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을 탐색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다양한 방식들 자체를 자녀의 일탈로 인식하고 파괴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특정 종교를 믿을 것을 권유하면서 인생을 도박판에 던지기를 바라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 모든 행동들은 자녀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믿는 종교관에 맞춰서 자녀를 궁지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앞서 이야기했던 공동체의 순환을 파괴하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나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결혼 생활이라는 믿음을 가르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신뢰 없이 서로를 이용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연애나 결혼이 행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다음 시대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수족으로 부리고자 하는 탐욕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상황은, 멀지 않은 미래에 경제적 궁핍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저는 많은 나이 어린 사람들이 행복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서 살아간다면, 한국은 앞으로의 미래에도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방향에 도달하기 위해서 산재되어 있는 갈등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