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교육은 사회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능력이 부족하지 않은데 돈을 덜 받는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는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능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을 성 평등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여자여서 혹은 남자여서 그럴 수 있다는 발언 자체가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지금 10대의 성에 관한 개념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세대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스팅을 적어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30대 이상의 분들이라면 성별에 관계없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싶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남성에 비해서 여성이 우월하다는 개념
10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 돈을 벌기에 더 수월하며 능력면에서도 우월하기 때문에 여성에 관한 배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발생되고 있습니다. 여자가 마음만 먹으면 남자를 실력으로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들이 성인지 교육을 토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게임을 한다고 가정할때,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게임 실력이 좋지 않다면 저를 포함해서 30대 이상의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자가 그 정도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남자 아이들의 발상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여성이 일부러 빌런 짓을 즐기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거의 모든 면이 우월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러한 개념을 대입했을 때, 여자가 남자와의 근력을 제외한 경쟁에서 밀리는 결과는 거의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러한 발상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더라도 소수의 생각에 불과하다고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경쟁에 있어서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이기는 것은 늘상 있어 왔던 일이었으며 어디서 자랑을 할만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페티시로 돈을 버는 여성의 숫자가 대폭 증가했으며 군대를 다녀왔더니 여성이 더 쉽게 금전적으로 자리를 잡는 풍토가 조성되면서 그것을 목격한 10대 남자아이들의 생각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전 연령대의 남성들도 이런 인식의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남자들
예쁘고 부유한 여성을 만나서 집안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남자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과거 신데렐라 스토리가 남성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서 능력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인식하기도 하며 쉽게 울고 쉽게 포기하기도 합니다.
의지 할 수 있는 '강하고 예쁜 여성'은 어린 남성들 사이에서 이상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가적으로 다정한 사람을 더 이상형에 가깝게 보기 때문에 10대 남성들 사이에서 일본 여성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10대 남성들이 한국 여성에게 무서움을 느끼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30대 이상이신 분들 중에서 이 상황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남자가 강력한 육체와 정신으로 여자를 지켜내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즘 남자아이들은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 더 강한데 누가 누구를 지키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변화를 살펴보면서 일본의 초식남 현상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에서 초식남은 일부의 현상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서는 부모로부터 컨트롤되는 인생을 살아온 경험 때문인지 그 정도가 심합니다. 마마보이가 급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유아퇴행(幼兒退行)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문화가 조성되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아마도 두렵기 때문 일 것입니다. 여자도 적응하지 못한 사회에서 남자가 어떻게 적응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책임 없는 권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투표권은 과거의 왕정을 몰아내기 위해서 의기투합한 자유도시의 시민들에게 부여됐던 전통이 내려온 것입니다. 남성들이 전투에 참여해서 자유를 쟁취했기 때문에 과거에는 남성에게만 투표권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됐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자유로운 나라를 지켜내기 위한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이 강조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대리 책임을 지게 만들어서라도 책임을 져야 됩니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분들은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했지만 그때 그분들이 짊어진 책임 때문에 후손들이 권리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책임을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변화들 때문에 멀지 않은 미래에 남성에 비해서 더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은 그에 맞는 책임을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 때문에 모든 면에서의 절대 평등을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시간의 흐름은 한국 사람들을 그런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기성세대의 남성이 집안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딸에게 용돈을 주면서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의 가장이 무너지고 준비가 되지 않은 여성과 초식화된 남성이 심판대 위로 올라가는 날이 온다면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요동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투자한 투자가들은 절대로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리가 가도록 만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