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심리 ・2023. 4. 10.

연애 결혼 이야기, 연애에 실패해서 40대가 넘는 사람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애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성별에 무관하게 음지의 영역에 있는 방법으로 성욕만 해결하면 문제없다는 발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사랑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원인들과 40대가 돼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다는 환상이 왜 위험한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결혼이나 연애에 관심이 없다면 상관이 없지만 관심이 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여러 매체에서 하는 이야기를 무분별하게 기준으로 잡는다면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생식 가능 나이

행복은 여러가지 조건들의 영향을 동시에 받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행복의 모든 조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의도적으로 제외해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인간은 본능적인 만족감이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줍니다. 인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들은 비슷한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미래 지향적인 행복감인지 현재만을 위한 행복감인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충동적인 현재의 만족감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앞으로 불행한 미래를 경험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모두 함께 행복 할 수가 있는 방향인지, 나만 행복한 것인지도 구별해야 됩니다. 대부분 불화가 있는 가정들은 '나'만 행복한 상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구성원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본능의 영역에 있는 태어난 순간부터 각인되어 있는 유전자는 연애나 결혼의 목적에 있어서 '생식 능력'을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여성의 생식 능력은 만 35세 이후에 감소하기 시작하며, 만 40세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 할 정도의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신체 변화는 인간의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저는 여러 매체에서 여성은 40대 이후에도 출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 관해서 상당히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은 도박 중독처럼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경우에도 생식능력이 만 37세 이후에 감소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20대 초반 남성의 생식 능력이 30대 후반까지는 이어지지만 40대에 들어가면 남성의 생식능력도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감소하는 것이지 40대 여성의 경우처럼 그 확률이 급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은 50대 까지는 생식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연하 여성과 연상 남성의 만남이 반대의 경우보다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대 여성과 40대 남성 사이에서 출산이 가능할 확률은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20대 남성과 40대 여성 사이에서 출산 가능성은 낮습니다. 정확하게 '출산' 때문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우월한 대상을 만나고 싶은 본능이 행복감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적 사랑의 가치, 본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인 사랑이 모든 것을 능가한다고 주장합니다. 완벽한 사랑은 정신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이상적인 논리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습니다.

만약 사랑과 연애에 있어서 본능적인 끌림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외모의 아름다움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높을 이유는 없습니다. 대부분 정신적 사랑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상상 속에서 스스로를 못생긴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초월적인 존재 이상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거짓말과 왜곡을 하더라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그 강한 집착을 '본능'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훨씬 복잡합니다. 반드시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 할 수가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해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능력으로 사실에 근접한 현실을 직시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게 될지를 알고 있으며 그러한 연속선 상의 개념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신적인 사랑은 본능을 외면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이해하고 본능 이상의 영역에 도달했을 때 가능합니다. 결국 '강한 사람' 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방식을 무작정 따라하면 손해입니다.

인생의 선택 기준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발생된 결과를 참고해서 위험을 피해 가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 일 수가 있으나 다른 사람의 인생 자체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도 결혼도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완성된 루트를 따라 하면서 '거짓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이성의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많은 거짓말들이 심각합니다. 심지어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상대가 속아넘어가는지를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을 막연하게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강한 힘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실패하고 시간을 보내서 40대가 넘어간 사람들이 20대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스스로가 경험한 이성에 대한 혐오를 자신이 한 행동을 제외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글을 20대 혹은 30대가 보고 있으시다면 실패한 사람들의 투정은 무시하고 그들이 실패한 이유를 자세하게 살펴보실 것을 권합니다. 그 안에 답이 있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에 의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면 연애나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성을 계급주의 사고관에 입각해서 취급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러한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주인과 노비의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계급이 높은 자신에게 당연히 상납해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왕으로 인식하는 관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에게만 유리한 미래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하고 있습니다. 20대에서 성별갈등이 심화되면 가능성이 낮은 40대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그 기대심리는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이런 형태의 부조리함이 감소한다면 현재보다 나은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