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정이 리뷰,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따라가지 못한 작품성

넷플릭스에서 봤던 국내 작품들 중에서, 오징어 게임, 지옥 등의 작품들을 워낙 재밌게 봐서, 많이 비교가 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파'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장치가 아니라 작품의 핵심 뿌리였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작품을 보는 관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재밌게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주관적인 의견을 적어두었습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이'에서 볼 수 있는 메시지

이 작품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모성애와 관련된 '신파'에 동조되는 심리를 악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 때문에 좋지 않은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도 이 작품의 본질적인 이야기는 작품에서 노란색으로 표현되는 모성애와 관련된 영역도 마찬가지로 복제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중 복제한 뇌의 활성화 영역을 관찰하는 장면에서 빨강색으로 표현되는 '고통'과 초록색으로 표현되는 '의지'와는 다른 영역으로서 노란색 영역 '모성애' 혹은 '이타적인 마음'은 '의지'보다 더 높은 단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운 현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모성애를 포함한 인간의 다양한 정신 활동은 의지와 고통을 동시에 수반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영역과 경쟁하는 형태로 묘사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 때문에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판타지 요소로만 보기에는 나름의 철학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철학적인 면에 대해서 단순히 신파는 흥행수표라는 공식 말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로봇이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가진다는 발상을 차치하더라도, 굳이 로봇이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는 방식이 더 정교한 전투 로봇을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전쟁을 자극적인 재미를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작품에서도 묘사되는 것처럼 '정이'를 유흥을 위한 접대용 로봇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괴기스럽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괴기스러움도 잘 묘사하고 있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작품은 '인간의 인간성'이 아니라 '로봇의 인간성'을 '인간의 인간성'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부조화 때문에 난해했습니다.

 

또한 영웅적인 용병으로 묘사되는 '정이'가 연합군에 기여한 것을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녀가 노리개로 전락하는 것에 관해 누구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연합군은 존재의미를 잃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여전히 연합군 내에서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은 '정이'가 대수롭지 않은 용병에 불과했거나, 전쟁에서 이길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쟁 영웅을 전시에 웃음거리로 만들면 군인들의 사기가 감소한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내용 면에서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무리한 장치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미 실패한 인류, 개연성 부족

2315년 자연재해를 극복하지 못한 인류는 홍수 피해 등의 자연재해를 이유로 우주에 거주를 할 목적으로 하는 기지를 건설합니다. 이 기지를 '쉘터' 라고 부르는데요. 8,12,13호 쉘터가 아드라인 자치국을 선포하면서 나머지 최소 77개 이상의 쉘터들과 지구에 있는 인류까지 동원해서 전쟁이 발생됩니다. 이 전쟁은 무려 40년을 지속하는데요.

전반적인 이야기와 관련이 없어보이는 배경 설명에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작품에서도 묘사됐듯이 겨우 3개의 쉘터가 모든 인류를 상대로 40년 이상 전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인 용병 '윤정이'가 사망한 마지막 전투를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을 보면 확인할 수가 있듯이 적으로 나오는 아드라인 자치국 병사들 중에서 인간이 없다는 점은 아드라인 자치국이 인류로 구성된 국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매트릭스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약 단순히 80여 개 이상의 쉘터가 있는 상태에서 3개의 쉘터가 강한 것 일 뿐이라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드라인 자치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연합국의 사람들이 죽으면, A,B,C 타입으로 나눠서 뇌를 복제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복제한 '상훈'은 복제품이 자신과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발언이 있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인간의 뇌를 이용한 로봇화 작업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 두뇌 데이터를 복제하는 작업은 매우 자극적이지만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류는 현재 어떤 강한 존재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게다가 암 치료 기술도 없는 인류가 뇌 복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지나치게 개연성이 없습니다. 애초에 지구 환경을 구현해서 쉘터를 건설하는 기술력으로 나무가 여전히 자라고 있는 지구를 복원시키지 못한다는 설정도 모호합니다.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떡밥을 뿌려둔 중구난방 한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두뇌 복제나 인공지능 같은 컨셉을 영화로 만든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이미 매우 다양하게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튼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납득을 할만한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배우분들이 연기력으로 캐리 한 듯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