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형성과정, kbs 고려거란전쟁 리뷰 시청 후기

역사를 통해서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대에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왜곡된 접근을 한다면, 배울 수 있는 선대의 생각을 배울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고려가 거란과 싸워서 이기고 전세계 최강 몽골과의 싸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는 잘못된 역사관

한국에서 역사를 배울 때, 대한민국만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배웁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고려 시대에는 통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큰 나라가 망하면 그 나라의 사람들이 바로 다음 나라로 모두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일본이나 중국 등에 사는 사람들의 조상 중에서 고려에 살았던 사람들도 충분히 다수 존재 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이나 초원에서 패망한 나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도피처로서 사용됐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이 됐다면, 어떤 집안에서는 진 나라나 한 나라를, 또 어떤 집안에서는 몽골 제국의 후예를 자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역사를 정립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데요. 그 결과가 현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역사 패권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한국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단일 민족 사관은 빠른 시일 내에 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조상을 포함해서 옛 초원 사람들은 사람을 별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별의 움직임으로 시간 개념을 만들었으며,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을 북극성이나 태양, 혹은 달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다가 초원의 반농반목을 하는 여러 부족들이 남쪽의 농경 민족들을 정복하면서, 지배 계층이 됐던 초원 사람들은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지배계층에게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자(천손)'라고 주장했으며, 태양 신의 자손이라거나 북극성 신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초원 출신 사람들도 지배자를 태양에 빗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는데요. 그런 문화가 고착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기독교의 메시아나 불교의 미륵불 같은 구원자의 개념이 나라의 건국에 많은 영향을 줬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그 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현대에도 기복 신앙이 국내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애국가에도 나와있는 '하느님(하늘의 별)이 보우하사' 라는 구절도 전통을 계승한 것입니다. 그런 방식이 옳든 옳지 않은 지에 관계없이 말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하나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여러 국가로 나눠서 살게 된 사람들을 대한민국 중심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언어도 문화도 달라진 사람들에게 국가 통합을 강요한다면, 일제강점기 일본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고대인들 중에서 한반도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주장했던 황국신민이라는 개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단지 서열 정리를 위한 통합은 반발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공했던 역사도 마찬가지 맥락이었으며, 거란이 고려를 공격했던 역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거란의 야율씨도 고구려 사람의 후손 일 가능성이 높으며, 고려의 황제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모두 계승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고려와 거란은 전혀 관련이 없는 나라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방식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국가들은 대부분 다민족국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란족과 고구려가 아무 관련이 없는 집단이라고 믿거나, 한국인만 고구려의 왕족 혹은 귀족 계보를 계승했다고 믿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려는 왜 강했을까

고려는 외교에 매우 능한 나라였습니다. 고려에 관한 주위 국가들의 평가를 살펴보면, 고려의 영향력은 만주와 일본까지 뻗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완전한 중앙 집권 국가는 아니였습니다. 지방분권적 형태의 국가로서, 고려 이전 시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의 귀족이나 백제, 고구려 계 귀족들이 군벌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이나 만주, 연해주 등에 진출하고 있었으며, 서로를 견제하거나 합의하면서 고려 황제의 중재 하에 움직였습니다. 물론 고려 황제의 힘이 약해졌다면 군벌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라 계와 가까웠던 여진족과 교섭할 여지가 있었으며, 백제 계와 가까웠던 일본이나 고구려 계와 가까웠던 몽골과도 협상의 여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고려 중갑 기병

 

고려는 단독으로도 군사력이 약한 것은 아니였지만, 외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높았습니다. 고려가 내세운 대의에 다른 부족국가들이나 옛 나라의 귀족들도 공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고려가 살아남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인데요. 고려가 계승한 전통성도 중요했겠지만, 고려가 내세웠던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보장되는 시스템이 주요했을 것입니다. 결국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되면 그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초원과 단절하고 국제 무역로를 포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급자족에만 의존하다 보니 식량 자원에 문제가 생기는 흉년은 국가차원의 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업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몽골 제국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고려가 약한 국가였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몽골 제국에 바로 항복하지 않았던 국가들 중에서 고려가 생존 한 것만 봐도 고려가 약하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쿠빌라이칸에 의한 정치적 이유로 고려가 생존 할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힘이 없다면 중립국 선언 같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에서 항상 증명되어 왔습니다.

고려거란전쟁의 영향력

저는 이번 고려거란전쟁에 의해서 알려진 고려시대 영웅들과 고려 시대의 사람들의 정서가 지금의 한국인과 비슷했다는 것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거란전쟁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재미를 위해서 각색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역사 기록을 그대로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중앙에 헌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반 백성들이 존재했다면, 고려 시대에는 각자 잘 살기 위해서 협조하는 형태를 띄고 있었습니다. 상업은 사람들에게 인권을 부여했습니다. 사유 재산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줬으며, 그 권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고려 사람들은 당시 최강대국과의 전면전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