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많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내용들이 상당히 현실적이어서 스토리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영화 제작사 '씨앗필름'이 제작했으며 전도연, 설경구 등의 거물급 배우들의 열연 때문에 더 좋은 작품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길복순에서 묘사하는 어두운 '음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양지의 목자들, 음지의 암살자들
양지에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역사를 바꾸는 신비주의 목자들이 있다면, 음지에서는 중요한 사람들을 암살해서 역사를 바꾸는 '암살자'들이 있다는 설정의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길복순은 '암살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길복순에서는 암살도 엄연한 '직업' 이라는 표현에서부터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수백만 원에 사람을 죽이는 '무직자'들과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작품'을 하는 프로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죽었을때 발생되는 이익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그 이익의 일부를 암살자에게 전달해도 남는 장사여서 암살 기업들이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신용이 높은 암살 기업은 'MK ENT'인데요. 이들은 살인을 '작품을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고객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출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암살 기업을 이용해서 역사를 바꾸는 고객
암살 기업들에게도 규칙이 있습니다. 이 규칙을 어기면 제거 당하는데요. 작중 길복순은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했습니다.
- 미성년자는 죽이지 말것
- 회사가 허가한 작품만 할 것.
- 회사가 하는 작품은 반드시 트라이할 것.
길복순은 위의 3가지 규칙 중에서 3번째를 어겼습니다.
어떤 위험한 정치인이 불법적 행동을 자행하고 있는데, 그 정치인의 아들은 선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들은 정치인 아버지의 악행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아들을 자살로 꾸며서 죽이라는 의뢰를 MK에 요청하게 되는데요. 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한 길복순은 암살을 실패한 것으로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길복순은 제거 명단에 올라갔으며, 길복순을 대신해서 다른 암살자가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일반 대중들의 관점에서 '정치인'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세력에 의해서 아들이 협박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했으며 정치인 아버지를 지지한다는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결론 나게 됐습니다. 이제 이 관점에서 역사가 쓰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길복순에서는 암살 기업들이 역사를 바꾸는 핵심 세력이 아니라, 돈을 주는 고객이 암살 기업을 이용해서 역사를 바꾸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암살을 의뢰하는지는 암살 기업들 입장에서는 관심사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약육강식이 요동치는 짐승들의 세계
길복순에서 이야기하는 현실세계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이익을 위한 본능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계입니다. 돈이 입금되면 방금 웃고 떠들던 친구의 목에 칼을 겨눕니다. 심지어, 혈족도 이익 앞에 무의미하며 올바름을 관철시키려는 자들의 정의로움 또한 '이익'의 일종으로 이용합니다. 많은 대중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연출'만 잘해두면 모든 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라는 섬뜩한 논리가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자들이 등장한다면 제거하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비밀을 만들어내는 장치로서 '암살자'는 유용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배가 고프면 당연하다는 듯이 새끼를 잡아먹는 북극곰이 떠올랐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익의 기준은 '본능적 만족감'입니다. 인간세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암살하는 '길복순'은 자신의 딸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입니다.
작품에서는 여성과 여성이 사랑을 하는 동성연애관, 친남매가 사랑을 하는 근친연애관, 심지어 불륜과 불륜 대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가학적 사랑 등이 표현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에 하나는 처음 도입부에 등장하는 '재일교포 야쿠자'를 암살하는 과정입니다. 진검승부를 통해서 대중들의 인정을 받는 낭만의 시대는 끝나고 돈이 입금되면 깔끔하고 빠르게 제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묘사는 갈등과 전쟁의 양상에 있어서 대중들의 관심은 의미가 없어졌다는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길복순'을 10점 만점에 8점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고객의 도구들(암살자들)의 심리적 갈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요. 고객과 연관되어 있는 요소를 상징하는 내용들이 추가적으로 나왔으면 8.5점도 무난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액션에 초점을 맞추는 단순한 영화로 취급할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스릴러, 미스터리, 한국의 범죄물 등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취향에 맞을 수도 있겠다 싶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내용들에 대해서 내성이 없는 분들은 불쾌한 작품이라고 체감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끝까지 일관성 있게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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