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심리 ・2020. 10. 13.

부모 자식 불화에 대한 이야기, 어디서 부터 잘못 됐을까

부모 자식 불화에 대한 이야기, 어디서 부터 잘못 됐을까


사실, 부모 자식 간의 불화는 늘상 있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문제가 되는 상황들에 관해서는 특이한 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존에 당연하게 여겨오던 생각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산업 시대의 변화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과학기술은 이제는 그 속도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체는 이미 나온 것들이 많은데, 상품화 되지 않은 상태라고 이해를 하시면 될 겁니다.



결국은 사람에게 선택 받은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성공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떄문에 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인재상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은 여러모로 주목을 할만한 것입니다.



단, 20~30년만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아마도, 부모 자식간의 불화를 겪고 있는 자식세대는 20~30대가 많을 겁니다. 분명히, 어린시절에 부모님이 하라는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한 세대인데,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그야말로 마음대로 살면서 사회에서 온갖 경력을 쌓아 올린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서 그에 필요한 기술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부모 자식 불화로 이어지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지식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강력한 전기 발전기를 기반으로 하는 오프라인 하드웨어와 결합하여서 대신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미 예고된 것임에는 맞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한 편견

전통적인 사회, 그러니까 농경사회에서는 상하 위계 질서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물론, 유목민 사회(한반도 기준으로 북방 초원지대)에서는 각자 자립해서 알아서 살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존댓말 자체가 많이 발달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한반도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농경사회는 왕과 신하, 부모와 자식과 같은 상하 관계는 절대적인 규칙이었으며, 동시에 상식으로 통했습니다. 그것을 유교라고 하는 종교 형태로 발전 시키기 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국가를 이루게 하는 기본 틀과 같았습니다.



부모가 자식보다 무언가 모른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과 같게 취급 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에 분명한 이익이 되므로 장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 했듯이, 각각의 산업시대 변화에서 적용되는 이익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정서적 문화가 연동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지금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우울증을 만들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놓고 생각을 해보자면 지금 나이가 몇살인지에 관계 없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시대를 제대로 경험 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무엇인가 준비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오래된 지식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게다가, 부모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라는 기본 개념 조차도 서서히 붕괴되고 있으며, 자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가정 불화 원인은 산업변화와 권위욕

사실,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가정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권위는 내세우는 지식이나 선택이 옳은 상태여야 보존되는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자식을 통제하기 위해서 혹은 통제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대로, 자식은 부모로 부터 자립을 하고 싶지만, 부모의 돈은 탐이 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순적인 상황들이 가정 불화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누구도 제대로된 답을 내어주지 않은 세상에서 각자 도생해야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어디든지 생각이 맞지 않은 사람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부모 자식 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는 자식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아야 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돈을 비롯한 물리적인 혜택을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자식이 부모에게 돈을 요구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는 부모가 자식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함께 가려는 생각은 가정 불화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 넣기도 합니다. 오히려, 떨어져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정 불화로 자살이나 살인까지 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우울한 상황들이 경제위기와 같은 문제들의 부정적인 영향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일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권위를 가지고 하는 다툼을 끝내야 됩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명확한 근거가 미흡한 다툼은 누가 더 권위가 있는가의 싸움으로 직결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누가 최종 판단 권한을 가질 것인가? 누가 왕이 될 것인가? 라는 맥락과 비슷합니다.


왕 또한 신하 혹은 노예가 없다면 성립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폭군으로 군림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부모든지 자식이든지 거리를 두고서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그 폭군으로 군림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길을 걷게 될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립을 시키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봐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대로, 자식은 때가 되었으면 부모를 떠나서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만약, 자식이 홀로서기를 할 능력을 기르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부모에게도 끔찍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누가 더 권위가 있는 지를 놓고 싸움을 하다가, 중요한 시기를 놓쳐서 모두 암울하기만 한 상황에 놓인다면, 아마도 서로를 탓하면서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보다 현명한 선택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